『탐독』 취미란에 ‘독서’라고 쓰기

언제부터였을까? 이력서에, 동호회의 가입 신청서에 있는 취미란에 ‘독서’라고 쓰는 것을 망설이게 된 때는. 고리타분하고 정적인 사람으로 보일까 봐 두려웠는지도 모른다. 하지만 독서를 대신해 빈칸을 채울 취미를 생각해 내기란 쉽지 않았다. 독서 말고는 별다른 취미가 없음을 새삼 깨달았을 뿐이다.

무슨 대단한 독서가인 양 적어 놓았지만, 실상은 그렇지 않다. 누군가 내게 최근에는 무슨 책을 읽었는지, 그 책의 어떤 점이 좋았는지, 추천해 줄 만한 책이 있는지 묻는다면 나는 허둥지둥할 것이다. 하물며 다음과 같이 묻는다면 그저 입을 꾹 다무는 수밖에 없다.

“당신을 바꾼 단 한 권의 책은 무엇입니까?”

좋게 말하면 낭만적이면서도 순진하고, 나쁘게 말하면 진부한 질문. 그러나 책 좀 읽었다고 자부하는 사람에게 이만큼 묵직하게 다가오는 질문이 또 있을까? 나를 바꾼 책이라니. 그것도 단 한 권이어야 한다니. 수많은 책 중에서 겨우겨우 한 권을 떠올려도 그다음이 문제다. 왜 그 책인지 이유를 대야 한다. 그냥 그 책이 좋았다고, 참 재미있었다고만 말할 수는 없지 않은가?

그렇기에 이 책에 등장하는 10인의 예술가와 학자는 나를 감탄하게 한다. 앞의 질문에 대해 각자 자신만의 방식으로 대답하고 이야기를 풀어 놓지만, 적어도 자신이 왜 그 책에 끌렸는지는 확실히 안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지닌다. 움베르토 에코는 ‘내 인생의 책’으로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의 『픽션들』을 꼽았는데, 스물넷에 보르헤스의 작품을 처음 만난 후 “언제나 내 사랑은 보르헤스였어요.”라고 고백한다. 부러웠다. ‘언제나’와 ‘내 사랑’이라는 말을 이토록 당당하게 내뱉을 수 있다니.

정유정 김중혁

( 소설가 정유정과 김중혁을 인터뷰하는 저자 )

이 책에 실린 열 개의 인터뷰가 자기소개와 자기 자랑, 자기변명으로 흘러가지 않은 것은 저자의 공이라 할 수 있다. 모두가 스마트폰을 향해 고개를 숙인 이 시대에 저자는 성취감과 존엄을 선물하는 수단으로서 책의 힘을 믿는다. 그리고 책이라는 오래된 주제 앞에서 사람들은 자신의 ‘진짜’ 모습을 드러낸다.

덧붙여 이 책에 나오는 ‘운명을 바꾼 책’들이 대부분 잘 알려진, 고전의 반열에 오른 책들이라는 점도 눈여겨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.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가치와 의미라는 것이 정말 있는 것일까? 일단은 취미란에 ‘독서’라고 적어 넣고, 다시 생각해 봐야겠다.